직원이 이끈 '톰보이 회생'과 회생계획 원칙
기업회생에서 직원들이 회생절차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경영진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회생절차를 회피하면 직원들과 채권자들이 나서서 기업회생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산 여성의류 브랜드로 명성이 높았던 ‘톰보이’에서 찾아진다. ㈜톰보이는 현재 ㈜신세계톰보이로 바뀌었고 대표 브랜드도 ‘톰보이’에서 ‘스튜디오 톰보이’ 등으로 변화됐지만, 기업의 주인은 바뀌어도 원래 기업의 연속성이 어느 정도 유지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톰보이’로 통일)
톰보이가 기사회생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까지 최고경영자 회생절차 취하, 상표권 분쟁 등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직원들과 협력업체(채권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사회적 관심을 받았다. 이 회사는 기업회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회생절차를 성공적으로 종결한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톰보이 ‘기업회생’의 특징적 요소 |
1. 경영자의 회생 포기와 방해 |
2. 직원과 협력업체(채권자)의 회생 추진 |
3. 관련업종 전문경영인 출신 관리인 선임 등 법원의 역할 |
4. 동종업계에서 자본력 등을 갖춘 유력한 인수기업의 등장 |
톰보이는 국내 섬유산업이 왕성했던 1977년에 설립돼 여성의류 분야에서 대표적인 국산브랜드로 자리잡았고, 가장 먼저 연매출 1천억원을 돌파했던 기업이었다. 그런데 자산규모 3천억원에 달하는 톰보이가 어음결제를 막지 못해 2010년 7월15일 갑자기 최종부도 처리됐다. 실적부진에 과다차입과 경영진 횡령사건까지 겹쳐 커다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듬해 매출 259억원에 영업손실 101억원으로 전락했다.
당시 톰보이의 채권상황은 820억원 가량으로 추산됐는데, 은행권(6개점)이 500억원, 원부자재와 임가공 등 협력업체가 200억원, 대리점 및 유통관련 채무가 120억원 등이었다. 당시 채권자도 1천여명이 넘었는데, 숫자가 많은 협력업체 채권자들은 분야별 대표자만 파견한다고 해도 관계인집회의 규모가 300명 가량이나 됐다.
2010년 7월 부도 직후 톰보이 직원들은 ‘직원협의회’를 구성하여 회사가 사라지는 것을 막자는데 뜻을 모으고, 서울중앙지법(지금은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했다. 그런데 8월6일 당시 신수천 톰보이 대표이사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취하했다.
이에 직원협의회는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여 “신 대표가 기업회생에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면서 더 이상 회생절차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요청했다. 당 신 대표와 배준덕 전 총괄사장은 37억원 가량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고소된 상태였고, 아울렛 운영권 양도 관련 배임 의혹, 물류센터 제품의 부당한 염가매각 의혹 등으로 사내에서 신망을 잃은 상태였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지대운 수석부장판사)는 직원들과 채권자들이 주도한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인가하고 법정관리인으로 임영호 관리인을 선임했다. 법원은 톰보이의 존속가치가 파산가치보다 높다고 보았다. 즉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는 것이었다. 회생절차가 개시되자 직원들은 “좌표 없는 표류보다 일할 의욕이 충만해진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당시 법원은 200여명의 동료를 떠나보내고 회사에 남은 100여명의 임직원들이 몇 달째 체불상태에서도 채권자인 협력업체 관계자들과 의기투합하여 기업회생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점을 충분히 참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거액의 부채를 안고 있었던 터라 자력으로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는데 어려움이 컸기 때문에 ‘제3자 매각(인수)’ 방안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종래 톰보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섬유관련 전문가’가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것도 긍정적 요인으로 평가됐다. 임영호 관리인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코오롱그룹에서 대표이사까지 오른 전문경영인이었기 때문이다.
법원이 톰보이의 회생계획을 인가한 것은 무엇보다도 '공정ㆍ형평의 원칙, 평등의 원칙, 청산가치보장의 원칙, 수행 가능성'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법원은 회생절차의 기관으로 관리인과 조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고, 회생계획안에 대하여 인가를 받기 위하여 관계인집회 또는 서면에 의한 결의를 거쳐야 하고, 담보권에 대하여도 회생계획에 의하여 권리변경을 가할 수 있고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담보권의 행사를 제한할 수 있으며, 회생계획의 인가결정에 의하여 권리변경의 효력이 발생하고 10년간 분할변제할 수 있다.
법원은 회생절차개시결정과 동시에 관리인 및 조사위원ㆍ간이조사위원을 선임하고 회생채권자ㆍ회생담보권자 등 목록을 제출해야 하는 기간, 회생채권ㆍ회생담보권 등의 신고기간, 회생채권ㆍ회생담보권의 조사기간, 회생계획안의 제출기간 등을 한꺼번에 정한다.
법원은 회생계획안이 공정ㆍ형평의 원칙, 평등의 원칙, 청산가치보장의 원칙, 수행가능성 등 요건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면 인가 여부에 대한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들은 후 보통 관계인집회 당일 바로 회생계획인가결정을 선고한다.
회생계획이 인가되면 관리인은 지체 없이 회생계획을 수행하여야 한다. 회생계획 수행의 핵심 내용은 사업계획의 수행, 비영업용 자산 매각계획의 수행 및 이를 통하여 마련한 자금을 변제 재원으로 한 회생채권 등에 대한 변제이고, 그 밖의 사항으로서 정관의 변경, 임원의 변경, 자본의 변경 등이 있다.
회생계획에 따른 변제가 시작되면 법원은 관리인ㆍ회생채권자ㆍ회생담보권자의 신청에 의하거나 직권으로 회생절차종결결정을 한다. (...) 법원은 관리인이나 목록에 기재되어 있거나 신고한 회생채권자 또는 회생담보권자의 신청에 의하거나 직권으로 회생절차폐지결정을 하여야 한다. (...) 채무자에게 파산원인의 사실이 있다면 법원은 직권으로 파산선고를 하여야 한다.”
- <기업회생 이론과 실무>(홍인섭) 중에서 -
톰보이는 2011년 145억원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하고, 2013년 100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통하여 신세계인터내셔날로 경영권을 넘겼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13년 1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서 회생절차 의 종결에 나섰다. 2014년 톰보이는 회생담보권 139억원, 회생채권 155억원, 조세채권 6억여원 등 모두 300억원 가량을 변제하여 회생절차를 종결했다. 이로써 톰보이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회사로 편입된 것이다.
회생과정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신세계그룹)은 2011년 이후 325억원을 투자하고 지분 97%를 확보함으로써 톰보이의 새로운 모기업이 됐다. 그렇지만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 회사의 대표브랜드 톰보이 매출이 회생절차 중이었던 2012년에는 158억원에 그쳤지만 회생절차가 종결된 2015년에는 776억원으로 4배 가량 신장했고, 새롭게 런칭한 남성브랜드(코모도스퀘어)와 아동브랜드(톰키즈)도 매출이 점증했다.
톰보이는 이러한 회복세와 회사채 145억원 전액상환에도 불구하고 2016년 3분기까지 부채비율이 600%가 넘었고, 당시 ‘장단기 차입금’도 445억원에 달했다. 이에 1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서 차입금 상환에 나섰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다시 투자했다.
(표 = <더벨(the bell)>)
톰보이의 기업회생 스토리는 직원들이 국산브랜드를 살리고 이를 인수한 기업이 더욱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국내 패션시장 규모는 최대 40조원 가량으로 추정되지만, 과잉공급된 아웃도어가 퇴조하는 등 패션잡화가 전반적으로 불황에 빠지는 가운데 온라인구매가 확산되는 등 격변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출발한 톰보이는 대표브랜드의 매출을 2020년까지 2천억원으로 상향시킨다는 구상 아래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