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회생의 빛과 그림자
최근 기업회생 동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은 골프장의 회생개시 신청이 늘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골프장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기존 회원들은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기 때문에 반발하기 마련이다.
골프장마다 재정적 파탄에 이른 과정과 원인이 다르지만, 일종의 투자자로서 골프장 회원에 가입한 사람들은 균형 잡힌 합리적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대법원은 2018년 10월 18일 중요한 판례를 남겼다. 신탁공매의 경우에도 회원승계의 권리 및 의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골프장의 매각 및 회생절차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골프장을 둘러싼 ‘기업회생 뉴스’를 몇가지 범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먹튀’ vs ‘꿀꺽’ 논란 : 천안 버드우드CC, 고양 스프링힐스CC
골프장 관리업체와 대주주는 회생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지만, 회원들은 회생절차를 일종의 ‘먹튀’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반면에 일부 회사들은 일부 대주주가 회원들을 부추겨 파산으로 인도해 공매(경매)로 헐값에 골프장을 ‘꿀꺽’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원들은 회사측과 대주주들이 경영부실과 그릇된 투자 등으로 손실을 초래하고 그 책임을 자신들에게 전가한다고 반발한다.
상당한 금액을 받고 회원제로 개장한 골프장이 회생절차를 거치면서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하게 되면 기존 회원들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억대에 달하던 회원권에 대한 보상금액이 수천만원에 그치고 장기간에 걸쳐 변제하는 조건에 반발하기 마련이다. 몇몇 골프장의 회생절차가 기각 혹은 취소된 것은 기존 회원들이 법원에 항소했기 때문이다.
<기업회생 이론 및 실무>(홍인섭 저)에서는 기업회생절차에서 지켜야 할 기본원칙으로 ‘청산가치의 보장’을 강조한다. 기업회생의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이해관계인의 권익이 존중되어야 하고, 특히 채권변제의 수준이 청산가치보다 적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몇몇 골프장의 회생절차개시신청이 기각되거나 개시 이후 취소된 것은 법원에서 회원들의 항소가 타당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청산가치보장의 원칙'은 회생계획에 의한 변제방법이 채무자의 사업을 청산할 때 각 채권자에게 변제하는 것보다 불리하지 않게 변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사위원은 제1차 조사보고서를 통해 회생절차개시 결정일을 기준으로 청산가치를 보고하기 때문에, 개시결정일을 기준으로 청산가치를 보장하고 있으면 청산가치보장의 원칙을 준수한 것으로 여겨진다. 예외적으로, 채권자가 청산가치 이하로 변제받는 것에 동의한 경우에는 청산가치보장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천안 버드우드 골프장은 기존 회원의 입회비를 현금 및 쿠폰 등으로 30% 가량만 보상하는 조건으로 기업회생 인가를 받은 다음에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하려고 했으나, 회원들의 반대로 두차례나 회생절차가 무산됐다. 최근에 세 번째 회생절차개시를 시도하고 있다.
고양시 일산 스프링힐스CC도 2016년에 기업회생을 두차례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 혹은 취소됐고, 최근에 다시 회생절차를 시도하고 있지만 회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렇게 회원제로 시작한 골프장이 경영악화로 대중제로 전환하려는 유형은 충남 아산, 서산 등 2곳을 포함해서 전국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매 처분된 경북 김천 베네치아CC의 회원 승계를 둘러싼 분쟁에 대해서 기존 판례를 뒤집고 “신탁공매로 골프장 소유권을 취득한 인수자가 회원들의 권리·의무를 승계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법원이 골프장 회생과정에서 불거진 ‘먹튀’ 논란에 대해 과거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기존 회원들의 권리를 강조한 것이다. (하단 4. 참조)
2. 폐광지역 CC 도미노 : 강원 영월, 충남 보령, 전남 화순, 경북 문경 등
1970년대까지 한국경제의 에너지로 기여했던 석탄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폐광지역의 생존문제가 부각되었고, 그 대안으로 관주도 및 국가예산으로 관광산업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일찍이 폐광지역의 활로를 모색했던 영국, 일본 등에서도 관광개발로 성공한 경우는 독특한 입지와 남다른 노력이나 창의적인 구상이 있었던 곳에 국한된다.
강원도 영월(동강시스타), 충남 보령(웨스토피아리조트), 전남 화순, 경북 문경 등에는 폐광지역 후속대책으로 리조트 및 골프장이 조성됐지만 엄밀한 타당성 조사과 수요예측을 간과하고 당위적으로 추진됐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런 골프장들은 개장 이후 경영악화가 누적되면서 대부분 기업회생 절차를 앞두고 있다.
보령 웨스토피아 리조트(㈜대천리조트)는 매각을 추진했지만 세차례 유찰되면서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회생M&A를 통해서 인수가 이뤄지더라도 기업의 가치는 더 낮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출자기관인 한국광해관리공단(38.1%), 보령시(33.3%), 강원랜드(8.6%) 등은 손실 폭이 커진다.
동강시스타와 보령 웨스토피아리조트는 공공자금이 투입되면서 대중제 골프장으로 조성됐기 때문에 회원들과의 갈등은 없지만 국가재정의 비효율성 및 손실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된다. 재정적 파탄의 원인은 무리한 투자, 모객 등 경영의 실패, 시장동향 부적응 및 경쟁력 약화 등으로 알려졌다.
3. 법정관리 및 M&A를 통한 회생 : 레이크힐스 순천·용인·안성CC
반면에 ㈜일송개발은 레이크힐스 순천CC의 기업회생 과정에서 P플랜(사전계획안 제출)과 스토킹호스를 결합해서 47일만에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성공적으로 종결하고, 최근에는 레이크힐스 용인CC와 레이크힐스 안성CC의 회생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회원제였던 레이크힐스 순천CC는 2017년까지 주채권자인 우리은행과 워크아웃 절차를 진행하다가 실패하자, 올해 3월 회생절차에 들어가 P플랜과 스토킹호스를 결합해서 상당히 빠르게 회생절차를 마쳤다.
㈜일송개발은 순천CC의 성공적 사례를 반영해서 레이크힐스 용인CC도 서울회생법원에 ARS(자율구조조정지원 프로그램) 및 P플랜(사전회생계획안 제도)를 연계한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이러한 계획을 받아들이면 레이크힐스 용인CC는 최장 3개월 동안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이와 병행해서 P플랜을 준비해서 신속한 회생을 도모할 수 있다.
대법원 판결(김천 베네치아CC 회원권 승계) 이후 1순위 우선수익권자인 우리은행이 채권매각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 레이크힐스 용인CC는 ARS보다는 P플랜에 무게가 실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은 기존 회원들의 막대한 손실에 기대어 손쉬운 회생절차를 밟으려는 경향이 있었던 골프장업계에 대한 경고이자, 회생계획안 수립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과제가 됐다.
4. 골프장업계의 구조조정 : 빛과 그림자
① 다양한 회생절차 : 골프장 회생의 활성화
레이크힐스 순천CC의 사례처럼 기업회생 절차에서 회생기업에게 신속하고 유리한 조건을 부여하는 ARS(자율구조조정제도), P플랜(사전계획안제도), 스토킹호스(Stalking Horse) 등을 활용하여 회생기업, 주채권 금융기관, 인수기업, 펀드운용사 등이 ‘다자간 협력’으로 성공적인 회생스토리를 연출하는 골프장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② 대법원 판결 : 경북 김천 '베네치아CC' 회원 승계
2018년 10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신탁공매로 골프장 소유권을 취득한 인수자가 베네치아CC 회원들의 권리·의무를 승계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제27조)’에서 명시한 체육시설업 등의 승계에 대한 조항과 달리 신탁공매는 예외적으로 회원자격이 승계되지 않는다는 기존 판례를 바로잡은 것이다. 이번 판결은 유사한 분쟁을 겪고 있는 전북 익산 웅포CC와 제주도 제피로스CC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이 “신탁공매에 따른 골프장 인수자에게도 회원의 권리의무를 승계하는 것이 체육시설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부합한다”고 판시한 것에 대해 기업회생절차에서 어려운 관문이 하나 더 생겼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골프장의 생태계’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고도 바람직한 변화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종래에는 휴지조각처럼 여겨졌던 회원권이 시중에서 거래되면 골프장 투자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③ 기후변화 : 폭염, 미세먼지 등 악영향 확산 추세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쾌적성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골프장도 최근 기후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상초유 폭염으로 영업은 물론이고 골프장 잔디관리에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미세먼지, 폭염, 혹한 등 기후변화로 인해 골프장의 관리 및 경영에도 적잖은 장애가 생기고 있다. 장기간 지속된 폭염과 예측불허의 강우 및 가뭄, 미세먼지의 주기적 내습은 골프장의 비지니스 모델과 관리방식에 새로운 압력을 가하고 있다.
④ 기회적 요인 : 신규조성의 제한 및 자연경관 등 희소가치
가속화되는 골프장 업계의 구조조정에도 만사가 그렇듯이 그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빛도 존재한다. 경제 및 소비성향의 변동과 기후변화는 골프장업계에 도전이 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입지조건을 갖춘 곳은 여전히 투자가치를 갖게 될 것이란 시각도 많다.
올해 새로 조성된 골프장은 전국 7곳으로 알려졌다. 경기 가평 베뉴지(27홀), 전남 강진 다산베아체(27홀), 경기 안성 아덴힐(18홀), 경북 의성 파라지오(18홀), 부산 스톤게이트(18홀), 충북 보은 클럽디보은(18홀), 울산 더골프클럽(10+8홀) 등이다. 내년에는 인서울 27, 영암 솔라시도, 내장산, 석모도, 베어크리크 춘천, 일레븐, 샴발라, 세종 레이캐슬CC 등이 개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장 건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지역사회와 일반적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신규 조성이 제한되면서, 역설적으로 기존 골프장의 희소성 및 인수가치는 (균일하지 않지만) 증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녹록치 않은 경제여건에 기후변화까지 맞물려 골프장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한때 ‘골프장 망국론’이 나올 정도로 광풍이 불었던 골프장 건설은 이제 법적 규제와 비판적 여론으로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경관 및 주변환경을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 및 확대하고 경쟁력을 높여서 시장가치를 제고한 골프장들은 살아남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