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기업회생절차와 수명판사의 역할
기업회생 절차에서 법원은 채권신고, 채권액 확정(시부인), 회생가치 산정, 회생계획안 수립, 관계인 집회 등 복잡하고 구체적인 실무를 일일이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관리위원의 역할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미지=Daum)
서울회생법원의 경우도 30명 가량의 판사가 수백 건에 달하는 사건을 관장하다보니 관리위원에게 상당한 위임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서울회생법원에 소속된 관리위원이 9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1인당 평균 40개~50개 사건을 담당하는 셈이다.
이렇다보니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의 대표 등 이해관계인들이 판사와 관리위원을 만나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방대한 업무량에 따른 불가피한 위임이라고는 하지만 자금집행을 비롯해서 관리위원에게 위임된 권한이 너무 많아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관리위원이 판사에게 2개월 동안 보고를 하지 않고 회생기업 업무를 임의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관리위원은 변호사, 회계사, 상장기업의 임원, 은행 등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자 등이 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금융권 출신이 대부분이다. 관리위원은 ‘관리인’(흔히 대표이사)과 ‘조사위원’(흔히 회계법인)을 감독하고 채무자 회사의 신청서류에 대해 위임된 권한 안에서 허가하는 등 법인 회생절차 전반에 걸쳐 막중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런데다가 신분은 계약직 공무원(임기 3년)이지만 연임(6년)도 가능해서 회생법원 판사의 평균 재임기간(2년~3년)보다 길고, 구체적 업무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회생절차에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일부는 회생기업의 임원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생겨서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대법원은 지난 6월 28일 ‘회생·파산위원회’를 열고 관리위원에 관한 제도개선에 나섰다. 채무자(회생신청 기업)에게 사활이 걸린 각종 허가업무에 대해서 ‘지체 금지’, 관리위원 언행의 인사고과 반영 등을 통해서 보다 원활한 소통과 공정한 업무수행을 유도하기로 했다.
<기업회생 이론 및 실무>(저 홍인섭 변호사)에서도 관리위원회와 관리위원의 업무와 권한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관리위원회는 ‘관리인ㆍ보전관리인ㆍ조사위원ㆍ간이조사위원ㆍ파산관재인ㆍ회생위원 및 국제도산관리인’의 선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 업무수행의 적정성에 관한 감독과 평가를 하게 된다. 또한 회생계획안ㆍ변제계획안에 대한 심사, 채권자협의회의 구성과 채권자에 대한 정보의 제공, 회생절차 진행상황 평가, 관계인집회 및 채권자집회와 관련 업무 등을 관장한다.
무엇보다도 관리위원회가 이러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관리위원’에게 업무의 일부를 위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관리인’(통상적으로 기업의 대표)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무도 관리위원에게 위임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재산의 처분행위(등기 또는 등록의 대상이 되는 재산의 처분행위는 제외), 재산의 양수(제3자의 영업을 양수하는 경우는 제외)를 비롯해 회사운영에 관한 전반적 사항을 위임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자금의 차입 등 차재, 법 규정에 의한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 소의 제기, 소송대리인의 선임 등, 모든 직원의 급여 결정, 계약의 체결 등 의무부담행위, 어음ㆍ수표계좌의 설정 및 어음ㆍ수표용지의 수령행위, 운영자금의 지출 등이다. 이쯤 되면 생사여탈권을 쥔 대리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법에서는 이해관계인이 ‘관리위원’의 공정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기면 기피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관리위원이 스스로 해당 사안의 결정에서 회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관리위원에게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되지만, ‘회생절차의 폐지’까지 판단할 권한을 가진 관리위원에게 어지간한 사안이 아니고서는 이의신청을 하기 어렵다.
국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에서는 수명판사의 역할이 막중하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Chef d’orchestre)에 비견되는 막중한 권한을 갖는 수명판사(受命判事)는 회생절차개시결정과 함께 지명되는데, ‘독립적인 절차수행기관’으로서 법원의 지시에 종속되지 않는다. 회생절차의 진행과정을 감시하고 이익과 권리 등을 공평하게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지휘 및 통제하면서, 기간 등 법적 절차, 관리인과 채권자대표의 조율 및 교체 등 인사에 관한 사항 등에서 ‘절차의 핵심축(pivot)’으로서 각종 권한을 행사한다. 법원은 필요하면 제2 수명판사를 임명할 수도 있다.
최근 국내 법원도 개인회생 변제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사전회생계획’ 등을 통해서 보다 빠르고 단기적인 회생절차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대규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2월 <이투데이> 인터뷰에서 “한진해운도 사전회생계획안(프리패키지플랜, P플랜)을 적용했다면 기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부장판사는 “법원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 뒷짐을 지거나, 반대로 기업을 직접 구조조정하고 경영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회생·파산 절차에서 판사들이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면서 “채권자 조정과 관련해서 법원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수명판사의 역할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프랑스에서 수명판사의 역할이 막중한 것은 국내 법원의 인적 구성 및 업무량이 다른 사정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업회생에 관한 법제도의 이념과 정책방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내처럼 금융권 출신 관리위원이 판단해야 하는 것보다 법적 이념과 입법 취지에 정통한 수명판사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관련법에서 기업구제와 실업방지를 우선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채권자의 권리를 보다 공평하게 고려하는 국내 법제도와 결을 달리한다.
개정된 기업회생 관련 기본법(1985)은 제1조 1항에서 기업회생을 최우선 목적으로 명시하고, 다음으로 고용과 기업의 유지를 두 번째 목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나서 제3순위로 채무 해결을 언급했다. 즉 기업을 살리는데 첫 번째 목적을 두고, 두 번째로 실업을 막고, 세 번째로 채무를 청산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는 파산에 직면한 기업을 구제하고 보호하는 공적 이익, 사회적 목표가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회생절차에서 예비적 절차로 ‘화해절차’를 따로 두고, 법원은 조정관(mediator)을 임명해서 이해관계인의 이해를 조정시킨다. 여기서 채권자는 기업(채무자)에게 지급기간 연장 혹은 채권할인 등을 해줄 수 있고, 화해절차를 통해서 기업이 위기를 벗어나면 할인해 준 채권의 전액을 다시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절차의 입법 취지는 예기치 않은 ‘악소문’ 등으로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조기에 효과적인 대처를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화해절차에서 조정이 무산되면 회생절차가 2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절차개시결정에 따라 통상적으로 6개월 동안 ‘주시단계’에서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진단하고 회생계획을 수립한다. 이 단계는 6개월씩 두차례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대 18개월까지 진행될 수도 있다.
법원은 첫 단계를 종료하면서 기업의 회생 혹은 청산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기업의 재건을 통해 자체 경영을 유지하는 방안과 제3자인수를 추진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두 번째 단계에서 회생계획 실행에 착수하거나, 아니면 회생절차를 종료하고 청산절차로 밟게 된다. 관리인은 회생계획안을 통해서 기업의 영업재개와 기업의 양도, 혹은 제3의 대책(혼합적 방안)에 대한 판단의 자료를 제공한다.법원은 여기에 기초해서 회생 및 채무변제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기업의 존속을 결정하는데, 이 경우에 기업의 일부 확장 혹은 양도를 추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