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업회생과 ‘조세우선권’ 논란
영국은 헌법, 민법, 형법의 법조문이 없고, 판례가 집적된 것을 ‘common law(보통법)’이라고 부르는 불문법(不文法)의 나라이지만, 민형사소송법과 회사법(Companies Act), 도산법(Insolvency Act) 등은 성문법으로 제정돼 있다.
(이미지=네이버)
영국의 기업회생 제도는 비권위적이고 간편한 관리명령절차, 목적에 따른 절차의 단계화, 절차개시의 다양한 방법, 실질적인 자동중지제도, 관리인의 중립적인 지위, 재산보전관리제도와 조세우세권의 폐지 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법원에 관리명령을 신청하는 방법, 담보권자의 관리명령 개시 및 소명, 기업 또는 이사의 관리명령 실행이 모두 가능하다. 기업구제에 최우선 목적을 두고 ‘관리명령 절차’를 간소화해서 법원이 아닌 이해관계자도 개시할 수 있도록 하여, 3단계에 걸쳐 기업회생에 관한 원활한 처리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판외적 관리명령제'(non-court route into administration)에 의해서 유동담보권 보유자, 채무기업, 경영자 등 이해관계인도 관리명령절차를 개시하고 관리인을 선임할 수 있다. 이는 유동담보권이 존재하지 않거나 청산절차가 이미 신청된 경우에 다른 방법으로 관리명령 절차를 개시할 수 없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1단계에서 관리인은 기업회생에 최우선 목적을 두고 채권자와 화해를 통해 기업회생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율적 채무조정절차’(Company Voluntary Arrangement), 채무정리계획(Scheme of Arrangement)을 활용할 수 있다.
2단계에서 관리인은 청산절차와 비교해서 기업의 재산을 보다 유리하게 환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단계에서 관리인은 담보권자와 우선권을 가진 채권자에게 변제만족을 줄 수 있도록 채무 기업의 재산을 환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의 취지는 관리인에게 기업회생에 대한 가치판단을 정확히 인식시키고, 만약 기업회생이 어렵거나 혹은 2단계, 3단계의 목적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근거를 분명히 밝혀야 할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기업회생의 가능성을 제고하고 비담보채권자에게도 채권변제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함이다.
또한 '조세우선권'(crown preference)이 배당금 처리 등 도산절차를 진행하는데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점을 고려하여 2002년 회사법에서 폐지되었고, 퇴직금청구권, 급여 및 임금청구권과 석탄철광산업의 특별공과금 제한 등만 우선권이 있는 채권으로 인정된다.
주요 국가에서 조세채권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고, 영국 등은 이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추세이지만,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세우선권이 강하게 관철되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회생채권은 회사 사용인의 우선변제청구권(상법 제468조), 특별한 적립금에 대한 우선변제청구권(보험업법 제32조, 제33조)과 같은 우선적 회생채권, 일반 회생채권, 후순위 회생채권 순으로 우선권이 부여된다.
<기업회생 이론 및 실무>(홍인섭 저)에서는 “법정 후순위 회생채권의 개념은 없어졌으나 당사자 사이의 계약에 의하여 성립되는 후순위 회생채권이 있을 수 있다”고 환기시킨다. 변제순위에 있어 담보부사채, 무담보부사채, 기타 은행대출 등의 일반사채보다 나중에 받기로 특약을 한 후순위사채 등이다.
그러나 “조세 등 채권은 그 성질상 특수성을 갖고 있어 일반채권과 전적으로 동일시 할 수 없으므로 법에서는 여러 가지 특칙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세ㆍ관세ㆍ지방세 등의 조세채권과, 이에 준하는 건강보험료, 국민연금보험료, 산업재해보상보험료, 고용보험료 등은 일반회생채권에 우선한다. 국세 등 조세와 공적 보험료와 같은 준조세를 합쳐서 ‘조세 등 채권’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또한 회생절차개시 전에 ‘조세 등 채권’이 성립되었다면 원칙적으로 ‘회생채권’, 회생절차개시 후에 ‘조세 등 채권’이 성립되었다면 원칙적으로 ‘공익채권’으로 구분한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해 대법원에서 조세체납으로 인한 가산금의 우선변제권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파산선고 전의 원인으로 세금에서 기인하더라도 파산선고 후에 발생한 가산금은 후순위채권으로 보았다.(대법원 2017. 11. 29. 선고 2015다216444 판결)
한 채무자가 국세를 체납하자 세무서에서 부동산 압류를 했는데, 이 채무자가 파산선고를 받고 파산관재인이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세무서에서 파산관재인에게 가산금 포함 체납세액을 청구하자, 파산관재인은 납세의무 성립일이 파산선고일 이전의 국세 및 가산세만 납부하고 압류해제를 요청했다.
세무서에서 체납액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압류해제를 거부하자 파산관재인은 “나머지 체납 조세채권은 후순위파산채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납부는 하겠지만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국세와 가산금을 전액 납부했다. 세무서에서 압류를 해제하자, 곧 “파산선고 후에 발생한 가산금·중가산금 부분은 부당이득”이라고 반환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해 원심은 “파산선고 후에 생긴 가산금·중가산금은 재단채권에 해당한다”고 청구를 기각하였다. 재단채권(財團債權)은 파산재단으로부터 변제를 받는 권리로서 일반 파산채권자에 우선하고, 파산절차에 의하지 않고 변제를 받을 권리를 의미하는데, 이는 파산절차의 원활한 수행과 파산채권자 전체에 부당한 이익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재단채권자는 파산관재인에게 변제를 청구할 수 있고 파산관재인은 파산채권자에 대한 배당에 앞서서 수시로 변제해야 한다.
파산관재인은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항고했고, 대법원은 원심과 다르게 파산선고 후에 생긴 가산금·중가산금은 “국세징수의 예에 의하여 징수할 수 있는 청구권으로서 일반 파산채권보다 우선한다”는 특별규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즉, 파산선고 전의 원인으로 인한 국세나 지방세에 기하여 파산선고 후에 발생한 가산금·중가산금은 ‘채무자회생법 제446조 제1항 제2호’의 후순위파산채권에 해당하며 재단채권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파산선고 전의 원인으로 인한 국세나 지방세에 기하여 파산선고 후에 발생한 가산금은 ‘파산선고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 사건은 원심 파기로 인한 환송심에서 ‘화해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서 2명의 판사가 <법률신문>에 평석을 내놓았다. 최근 이진만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평석(評釋, annotation)에서 “파산선고 전의 원인으로 인한 국세나 지방세에 기하여 파산선고 후의 기간에 관하여 발생한 가산금·중가산금의 법적 성질이 재단채권인지 아니면 후순위파산채권인지가 다투어진 사안에서 명시적으로 후순위파산채권설을 채택했다”고 강조했다.
채무자회생법 제정 당시에도 파산절차에서 조세채권이 지나치게 우대를 받으면 파산채권자에 대한 배당률이 낮아지므로 독일 등의 입법추세에 비추어서 조세채권의 과도한 우선권은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가재정의 기초가 되는 조세채권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이후 논의과정에서 가산금은 일종의 이자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채권이라면 후순위채권이 될 것인데, 조세에서 파생됐다는 이유로 가산금·중가산금까지 재단채권으로서 우선변제를 받도록 하는 것은 조세채권에 대한 지나친 우대라는 지적이 수용돼 관련규정이 개정됐다. 이 부장판사가 평석에서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입법과정과 법 개정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타당한 해석”이라고 평가한 까닭이다.
이에 앞서 이주헌 서울회생법원 판사도 평석에서 “가산금은 본세가 납부기한까지 납부되지 않는 경우 미납분에 관한 지연배상금의 의미로 부과되는 부대세의 일종”이란 점을 상기시켰다.
채무자회생법에서 가산금을 후순위파산채권으로 명시하지 않고, ‘지연손해금’과 동일한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고, 채무자회생법 제정 당시에도 가산금을 후순위파산채권으로 열거하려다가 실패하였고, 후순위파산채권을 재단채권의 범위에서 제외한 것이 ‘과태료’를 염두에 둔 것이라도, ‘손해배상액의 성질’을 띠는 가산금은 재단채권이 아닌 후순위파산채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판사는 “미국은 가산금의 개념을 따로 인정하지 않고 이자(interest)의 개념 속에 넣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고율인 지연이자에 불과함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가산금’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다른 지연이자와 분리하여 도산절차 내에서도 별도로 취급하여 우대함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